작품소개
그리움과 복수심으로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두드리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전공 악기인 피아노까지 팔게 된 강이나. 하루하루를 살아 내기에도 벅찼던 그녀는 우연히 다시 만난 친구 호준을 통해 운 좋게 고액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건 바로 호준의 보스, 류타가 한국에서 머물 집을 관리하는 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날카로움과 오만함을 지닌 류타를 보며 이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 먹먹한 안쓰러움을 느끼고 용기를 내어 다가가지만, 그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데….
▶잠깐 맛보기
“빚이 있지? 얼마야.”
이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지극히 건조한 표정으로, 얼마쯤 기계적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어조는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 있다. 이나는 말을 돌렸다.
“찌개 어때요, 맛있죠?”
그러나 그는 봉투를 꺼내 이나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 정도면 될지 모르겠군. 더 필요하면 말해.”
“……갑자기 왜 그래요.”
“돈 필요하잖아, 너.”
“필요 없어요.”
“없던 자존심이 갑자기 생긴 모양이지? 줄 때 받아. 고맙다는 말 같은 건 나도 필요 없어.”
이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작정하고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그에게로 마음이 가 있는 그만큼, 서운하고 아프다. 이나는 봉투를 집었다.
“준다니까 받죠. 그런데 난 그냥은 싫거든요. 1년 치 월급도 선불로 받았고, 뭘 드려야 할까요? 가진 건 몸뚱이뿐이니까 몸을 드려야 할까요?”
그가 탁 소리를 내며 수저를 놓았다. 차갑게 굳은 얼굴이다. 서러움에 떠밀려 이나는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