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바람이 떠날까 두려운 겁 많은 달팽이와
그 달팽이에 사로잡혀 버린 따뜻한 봄바람의 이야기.
딱딱하고 무거운 집을 매고 다니는 예쁜 달팽이, 서윤희.
작고 단단한 집에 웅크리고 앉아서 살짝 밖을 보다가도,
누군가 톡 건드리면 쏙 들어가 버리는 여자.
예쁜 달팽이의 집에 허락도 없이 쑥 들어온 한가한 바람, 이연우.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예쁘게 달팽이 집을 지어 자신도 그 집에서
함께 머물고 싶다는 남자.
"달팽이가 제 등에 짊어진 딱딱한 집을 빠져 나와서,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간은 홀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곧 그리로 다시 찾아가게 될 거예요. 그 무거운 집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요. 달팽이는 결코 그 집을 떠나지 못할 거예요."
윤희로선 꽤 심각하게 말했는데도 연우는 여전히 싱그럽게 웃고 있었다.
"그럼, 그 집에서 가출하고 싶어질 때, 나한테 와요. 내가…… 재워 줄 테니."
그의 미소가 좀 잠잠해지고 언어에 결기가 배었다. 농담 아니야, 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 책 속에서
"달팽이. 그렇게 단단한 껍질로 꼭 감싸서 지켜야 할 게 대체 뭔가, 그게 궁금해지려는 중이에요."
나직나직 흘러나오는 그 말들은 혼잣말 같았다. 그런 연우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막막한 불안감이 윤희에게 다가들었다. 무언가 어둡거나 위협적인 느낌은 분명 아닌데, 마음을 휘젓는 두려움 혹은 불안. 그 정체를 명확히 알 수가 없어 더욱 그러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윽고 그가 명쾌한 목소리로 결론을 냈다.
"예쁜 달팽이, 라고 해 두죠. 서윤희라는 여자."
윤희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한가한 바람, 이라고 해 둘게요. 이연우라는 남자."
씩 웃는 그의 표정에 악동의 그림자가 비쳤다. 비밀스러운 어떤 일을 모의하듯 그가 물었다.
"그럼 우리, 이제 시작한 거네?"
"인터뷰 말이에요?"
그 소리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윤희는 그렇게 받아 되물었다.
"아니, 여자와 남자. 서로서로 그렇게 바라봤으니까 시작한 거란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