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내가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나를 찾아온 남자.
방학도 반납한 채 별장지기인 부모님의 일을 돕던 이진은 별장 주인, 지호를 맞을 준비로 며칠 전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귀하신 몸이랍시고 며칠째 사람을 달달 볶은 것도 모자라, 별장에 도착한 뒤 자신을 ‘도토리’라고 부르는 장난스러운 그의 태도를 보자 그녀는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것만 같아 영 못마땅할 뿐이다. 그런 지호의 행동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귀찮아진 그녀는 그를 향한 관심을 일체 거두어 버리기로 결심하지만, 지호로부터 다소 의외의 말을 전해 듣자 그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지는데….
▶잠깐 맛보기
“도토리, 너 나 좀 보자.”
또 도토리라고 한다. 정말 듣기 싫어 죽겠는데 그가 왜 자꾸 나를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짓는데도 그는 내 감정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었다.
“싫어요.”
그렇게 말하고 그를 마주 봤다. 내 표정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을 보자 그만 기운이 쭉 빠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기다릴 틈도 주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를 보자 내 몸은 저절로 그를 따라갔다.
“왜 절 보자고 하셨는지…….”
그는 나를 말없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당장 고개를 돌려 다른 데를 보려고 했지만 그가 제지했다. 그는 혹시라도 내가 그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내 눈에서 익숙한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나는 그저 시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나, 생각나지 않아?”
“네.”
망설임 없는 내 대답에 그가 희미하게 웃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픔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한 남자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것이 소이진, 자신이라는 것도 모른 채 천진한 눈으로 그를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쓴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나직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기억해 본 적은……있니?”
▶목차
1장~10장
* 이 전자책은 2009년 타출판사에서 출간된 〈약속〉을 eBook으로 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