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해치려는 게 아니오.”
머물 곳이 사라진 겨울 앞자락에 만난
그 사내의 이름은 거련.
처음부터 잔잔히 흘러가던 내 일상을 깨뜨렸다.
“나와 함께 가는 건 어떻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의 손에 글을 적었다.
‘뭐든 다 할 거예요.’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것 아니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젓고 다시 글을 적었다.
‘함부로 아니에요. 거련이라서 하는 거예요.’
그 직후, 거련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돌처럼 딱딱하게 변했다.
“내가 뭘 요구할 줄 알고.”
다소 퉁명스럽고 거칠게 얘기했지만 깜짝 놀라거나 겁먹지 않았다.
“난 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오.”
‘意中之人’
마음 깊이 품은 사람이라는 그 글자를 나 역시 가만히 그의 손등에 써 보았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시오.”
손발이 떨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데도 나는 오히려 그의 허리춤에 팔을 둘렀다.
마치 그러면 병이 낫는 것처럼 그에게 더욱 더 매달렸다.
언뜻 머리 위에서 탄식과도 같은 한숨이 들렸지만 그 또한 나를 놓거나 뿌리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