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꿈을 찾으려다 얼렁뚱땅 남자를 찾았다. 그것도 사우론의 눈을 하고 있는!
따뜻하지만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듯 지나가는 느낌과 함께 단잠에서 깨어나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그래, 분명 눈을 뜨기 전까지만 해도 이보다 더 산뜻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었다.
그러나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잠이 덜 깬 상태로 끔뻑끔뻑 눈을 떠 보니 광활한 모래에 떡하니 보트가 세워져 있었다. 그제야 내가 보트에서 잠이 들었다는 것과 함께 차례로 모든 것이 생각나면서 가능하다면 다시 기절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멸망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주변엔 모래와 나무, 그리고 물밖에 없었다. 꿈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너무나 생생한 천연색의 경관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세상이 멸망하다니. 어느새 멀미는 말끔히 사라졌지만, 멀미보다 더 지독한 두통이 생기려고 했다.
혼란스러워 발이라도 동동 구르면서 발광이라도 할 것 같은 마음을 애써 차분히 가라앉히며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잠이 들었었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하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지구가 멸망할 정도는커녕 살짝 눈만 붙였던 게 일분 전 같은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냔 말이다!
-본문 중에서-
“저는 그럼 하던 일을 마저…….”
위험으로부터 몸을 돌리기도 전에 나쁜 놈의 손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진지한 얼굴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나쁜 놈의 시선 때문에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 버렸다.
나쁜 놈의 얼굴이 내 얼굴을 향해서 내려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 나쁜 놈의 얼굴이 코앞에서 보였을 때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쁜 놈과 키스를 하고 있었다.
진한 커피 향을 남기고 나쁜 놈이 내게서 떨어졌다.
“이, 이게 뭐하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나쁜 놈이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보면 몰라? 지혈하는 거지.”
지금 웃음이 나와? 게다가 뭐, 지혈? 자기가 무슨 의사야? 것보다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거야…….
혼란스러운 머리로 성신이가 말했던 ‘아름다운 입술의 희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금 나쁜 놈이 입술을 부딪쳐 왔다. 나쁜 놈의 입 안에 남아 있던 커피 맛이 내 혀에서 흘러나온 금속의 맛으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그 뜨거운 금속의 맛을 다시 내가 느껴야 했다.
나쁜 놈은 자신이 느껴야 할 맛을 다 느낀 것인지, 아니면 얼토당토않은 지혈을 다 끝낸 것인지, 입술에서 부드럽게 멀어졌다.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몰라 뒤죽박죽인 얼굴로 나쁜 놈을 보았다.
“이번에도 지혈한 거예요?”
“아니.”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얄미웠다.
“그럼 뭐예요?”
“키스지, 뭐긴 뭐야.”
나쁜 놈이 내 손을 잡고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불시의 공격으로 몸이 기우뚱하고 나쁜 놈에게 쓰러지면서, 마치 안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쁜 놈은 나를 밀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두 손을 모아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내 귀에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때? 나처럼 착한 사장은 없지? 직원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런 사장은 없을 거야.”
나쁜 놈의 목소리가 너무나 달콤해서 사랑 고백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지, 지금인가? 날 좋아하는 거냐고 물어볼 타이밍이? 아, 아냐! 난 못해. 그냥 몰카도 아니고, 반라의 몰카를 찍은 변태 여자로 낙인찍힌 오늘 어떻게 물어봐!
나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나쁜 놈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목차
프롤로그
1. 무인도
2. 초코바
3. 탈출
4. 인생무상
5. 마른하늘에 날벼락
6. 로망
7. 동창회
8. 가발 쓴 생물
9. 충동
10. 소개팅
11.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12. 동요
13. 라이벌
14. 모처럼의 기대
15. 이정표
16. 아픔을 잊기 위해서는
17. 개(犬) 같은 예지력
18. 몰카
19. 착한 사장
20. 딸기의 주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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