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붉은 색이 하도 선명해 어쩐지 무섭기까지 한 꽃무릇이 그 곳에 가득 피어 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붉은 꽃무릇이 만개한 들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하율이 말했다.
“아름답지? 난 어릴 때 이 꽃을 보고 난 뒤로 다른 어떤 걸 봐도 다 그저 그럴 뿐이었어. 이 꽃 본적 있어? 이름이 뭔 줄 알아?”
“……아아……들어본 적은 있는데……틀림없이.”
“상사화야.”
“아……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저기 나 좀 내려줘, 하율아.”
“그럴래?”
사실은 좀 더 하율의 등에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다은은 잠자코 땅으로 내려섰다.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멀리서 풍경소리가 좀 더 뚜렷이 들려왔다. 절 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절로 올라가는 길이었다면 마음 편하게 이 붉은 꽃을 봤을 텐데. 다은은 실제로는 처음 보는 꽃을 보며 그런 생각했다.
이 꽃은 아름다워. 찬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만큼 붉어. 붉지만……내가 아는 붉은 색과는 달라. 이건……이건……혁의 붉은 색이 아냐. 새하얀 눈 위에 퍼진 맑은 핏물 같은 혁의 붉은 색이 아냐. 이건…….
“이 곳에 꼭 널 데려오고 싶었어. 여긴 내 심장부나 다름없거든.”
상사화 위로 두 손을 뻗어 꽃을 유혹하기라도 할 듯한 하율이 다은을 돌아보며 환히 웃었다. 지독히 예쁘다. 이 요사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꽃 속에서도, 오히려 꽃을 압도하는 듯. 달도 뜨지 않은 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검은 하늘에 피어오른 불꽃의 붉은색 같은 상사화. 찬란하지만, 순간적이고 그래서 더 강렬하게 기억되거나, 아니면 잊혀지거나……에 너무 잘 어울리는 하율. 뭐라고 했더라? ……심장부?
다은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치고만 자신을 발견한다. 그 사이 하율은 꽃대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점점 더 꽃무릇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째선지 그 모습을 보던 다은의 입에서 묘한 속삭임이 흘러 나왔다.
“……위험해.”
― 본문 中 ―
여기 네 사람이 있다. 잃어버린 가족대신에 자신을 받아준 가족, 그중에서도 한결같이 그녀를 지켜준 다정한 혁을 맹목적으로 사랑한 다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차가운 마음속에 단 한번의 기적으로 파고든 작은 꼬마를 한없이 사랑해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완벽한 행복을 주려한 혁. 끝없는 어둠을 헤매는 악몽을 거둬가고 넘치는 애정을 꿈꿀 수 있게 만든 다은을 탐내서 숨 막힐 만큼 절박하게 상대를 묶어놓는 데에 집착한 하율. 혁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다은을 부서뜨리는 것조차 자신의 사랑이라 믿은 지현.
살아있는 동안은 단 한번도 멈추는 일이 없는 심장처럼, 그렇게 그 사람을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붉게 피를 흘렸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 사람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사람이 좋아서, 미치게 좋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