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5대째 딸이 없는 최씨 일가의 수장, 일호.
정초부터 세 아들들에게 어명을 내린다.
“사주에 딸이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라!”
학진, 학명, 학선.
그들은 과연, 운명의 짝을 만나 일호가 소원하는 딸을 안겨줄 수 있을까?
- 내 딸을 낳아도!
-본문 중에서-
“아버지!”
일호가 몇 시간째, 세 아들을 마루에 꿇어앉혀 놓고 있었다. 합창이라도 하듯 자신을 부르는 아들들을 매섭고도 그가 커다란 눈을 들어 사정없이 아들들을 쏘아봤다. 일호의 서슬 퍼런 눈에 이내 고개를 숙인 장남 학진과 달리, 불만 가득한 얼굴로 둘째 학명과 막내 학선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일호의 눈치를 보며 곁눈으로 서로에게 발언권을 밀고 있었다. 학진은 이미 포기한 듯했지만 학명과 학선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학진이 학명의 옆구리를 계속 찔러댔다. 그나마 일호에게 할 말은 하던 학명이었다. 학선이 그에게 또다시 총대를 짊어지라는 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진즉 반발을 했을 테지만, 지금 분위기에서 입을 잘못 뗐다간 뼈도 못 추릴 기세였다. 학명이 한숨만 쉴 뿐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학명이 슬쩍 고개를 들어 일호를 바라봤다. 아직 50세도 안된 아버지가 노망이 났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올해 나이 스물다섯인 최씨 일가의 장손 학진은 그럴 수 있었다. 일호는 어릴 적부터 학진을 볼 때마다 20살이 넘으면 바로 장가보내야 된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 학진이 25살이 되도록 기다렸으니 일호가 오래 기다리긴 했다. 허나 이제 스물넷인 자신과 한 살 아래인 학선까지 올해 안으로 구슬 꿰듯 장가를 가라는 명을 내린 일호이었다. 분명 노인네가 노망이 난 게 틀림없었다.
장남인 학진에겐 3개월의 시간이, 잔뜩 불만을 터트린 학명에겐 6개월, 그나마 막내인 학선에겐 1년의 시간을 주어졌다. 그 시간 안에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거기다 한술 더 떠 결혼 전, 일호가 다니는 아주 용한 점집에서 사주를 봐야 된다고까지 덧붙여 말했다. 사주에 딸이 있어야 결혼 허락을 해주겠다고는 것이다. 21세기가 다가오는 이때에, 하물며 곧 세계인의 축제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한다는 이 나라에서,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황당한 조건을 건 장가를 가라며 명령하는 거였다. 이미 일호는 삼형제에게 그 어떤 타협의 여지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 다행이라면, 아무 여자나 데려와 사주를 맞추었으니 어서 그 귀하다는 딸을 낳으라고 안 한다는 사실, 그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