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지금 바로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처자가 죽는댔어.”
신경외과라면 국내 최고라고 불리는 만국대의 신경외과 전문의 채연수.
사람들의 뇌를 가르며 생명을 살릴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그래서 한순간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이없게 귀신을 보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메스를 놓게 되며 우울한 나머지, 낯선 남자인 한수혁과 술까지 마셨다.
‘마셔라! 마셔라! 쭉! 쭉 쭉쭉!’
그들의 옆 테이블에 앉은 귀신의 응원까지 받으며.
“저…… 귀신이 보여요.”
참다 못해 꺼낸 연수의 말에 수혁은 순간 머금던 술을 내뱉을 뻔했다.
“익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셔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 비싼 시간을 그쪽에게 쪼개 드린 만큼 그쪽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 주셨으면 좋겠군요.”
“아니, 진짜예요. 저는 대학 병원 의사예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귀신 같은 미신 따윈 믿지 않았다고요. 그런데 이제 제 눈에 귀신이 보여요.”
그렇게 연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읊어 대며 거나하게 취했다.
* * *
최신 어플 개발로 대박이 나 젊은 얼굴 없는 사장이 된 한수혁.
그에게 연애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런 친밀한 인간관계란 자신에게 사치라고 판단해서 멀리했을 뿐이다.
자신은 범죄자의 아들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에게 낯선 여자와 함께 모텔에 올 날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가지 마요.”
모텔 방의 침대에 눕혀 준 후 돌아서려던 수혁의 발걸음을, 그녀의 한마디가 붙잡았다.
“저 여기에 남아 있으면 사고 칠 텐데요.”
술김에 경계가 한껏 풀어진 연수가 매혹적으로 입술을 말아 올리며 애써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숨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은 수혁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냥 오늘 밤은 제 곁에 있어 줘요.”
그렇게 뜨거웠던 하룻밤, 그 불장난으로 이어진 둘은 서로의 세상을 공유한다.
귀신들의 세상까지도.
“수혁 씨가 했던 조언이었잖아요. 신내림을 받는 대신에 사연 있는 영혼들을 돌보다 보면 다시 수술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요. 그러니까 그 일 같이 해 봐요, 우리. 연수 씨는 수술의로서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저는 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 위해.”
그렇게 둘은 각자의 목표를 위해 서로의 곁을 지키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