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우울할 땐 달려와 술을 사 주고
비가 오면 우산 들고 기다려 주고
입맛도 습관도 나보다 더 잘 아는 친구.
“좋아한다. 친구 말고, 여자로.”
십 년 넘게 곁에서 맴돌며 좋은 친구인 척
첫사랑에 상처 입은 그녀를 보듬기만 한 시간들.
지켜만 보던 친구 이도윤은 이제 그만할 거야.
“친구인 널 잃을까 봐 무서워.”
“진지하게 생각해 봐. 남자 이도윤으로.”
항상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실과 바늘처럼 늘 함께.
어떤 이름으로든 널, 잃고 싶지 않아.
사랑과 우정 사이, 친구와 연인의 거리.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시작할 우리의 관계.
“네가 내 옆에 없는 건 상상하기 싫어.”
“그러니까 나랑 연애하자, 서재경.”
[본문 내용 중에서]
“어? 눈이다.”
재경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뉴스에서 어쩌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일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정말로 눈이 왔다. 날씨가 평년보다 따뜻하다고 해서 기대를 안 했는데.
“작년엔 눈이 거의 안 왔는데, 눈 오니까 좋다. 그렇지?”
“좋긴 뭐가 좋냐? 길만 미끄럽고.”
“무드 없는 자식.”
하얗게 떨어지는 눈을 보며 기분이 좋아진 재경이 분위기를 모른다며 도윤을 타박했다. 그래도 얼마나 낭만적인가? 12시가 살짝 넘은 시간이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제일 먼저 맞는 기분이.
“대리 금방 온다더니, 되게 안 오네.”
분위기에 흠뻑 취한 재경과 달리, 도윤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툴툴댔다.
“이도윤, 오늘 잘 먹었다.”
“잘 먹어야지. 네가 오늘 제일 많이 먹은 거 알아?”
“뭐?”
재경이 도윤을 향해 쏘아보자 그가 장난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올 한해도 나랑 친구해 줘서 고맙다. 내년에도 우리 지금처럼 좋은 친구로 지내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재경이 도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소원처럼, 내년에도 좋은 친구를 하자는 재경의 손을 바라보며 도윤은 가만히 서 있었다. 재경이 내민 손을 왠지 잡기 싫었다. 좋은 친구라.
“싫은데?”
“뭐? 치사하게. 내가 너한테 밥 좀 얻어먹었다고 친구 하기 싫다는 거야?”
“어.”
“진짜?”
“친구 말고, 애인 안 할래?”
갑작스런 그의 말에 재경이 내밀었던 손을 멈칫했다. 농담도 잘 한다며 말을 해야 하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의 눈동자가 너무도 진지해서 재경은 내밀었던 손을 내리며 애써 시선을 회피했다.
“이거 농담도 장난도 아니야. 친구 말고, 남자로 생각 안 해볼래?”
재경이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도윤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했다.
“나, 너 좋아한다.”
“…….”
“친구 말고 여자로. 아주 오래전부터.”
“…….”
“그러니까 나랑 연애하자. 서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