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평소와 다른 신경질적인 건조한 목소리.
남편이 딸의 출생을 의심했지만,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금방 평소대로 돌아갈 거라고.
힐라네는 그렇게 믿었다.
“널 속인 여자의 아이를 위해 평생 희생하겠다는 거야?”
“…….”
“제발 정신 차려, 르반.”
하지만, 남편은 다른 여자의 말을 더 신뢰했나보다. 우습게도.
“우리, 이혼하자.”
아무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아졌을 때, 힐라네는 마침내 끝을 고했다.
분명 행복할 거라 여겼던 믿음은 모두 잘못된 착각이었다.
* * *
“전쟁을 막기 위해선, 네가 벨제트 대공과 맺어져야 해.”
그 후, 레퀴르의 전 황태자이자 벨제트 대공인 아헨과 재혼한 것은 순전히 딸아이를 위해서였다.
벨제트 대공비와 새어머니로서의 의무.
그 이상의 것은 기대하지 않길 바랐다.
대공 역시도 별다른 욕심은 보이지 않았으니 같은 생각이겠지.
그런데 왜일까. 국혼식 이후 치르는 첫날밤에서, 그저 다정하기만 했던 사람이 이상하다.
“비. 고갤 드시지요.”
“…….”
“언제까지 저를 쳐다보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부부의 의무를 다하셔야죠.”
아헨의 푸른 눈동자는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같이 빛났다.
금방이라도 힐라네를 잡아먹을 것처럼.
그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노골적인 집착에 힐라네의 가녀린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