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아이언 맴(Iron ma'am)이라고 불릴 만큼
냉철한 이성과 뛰어난 수술 실력을 지닌 외과의 마리안.
그녀에게 환자는 고장 난 곳을 고쳐야 할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난생처음 진심으로 살리고 싶은 남자가 나타난다.
“경찰은 다 이래요? 다들 이렇게 쉴 새 없이 찢어지고, 깨지고 그러냐고.”
최연소 청장감이라고 불릴 만큼
사건 해결에 최적화된 집중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강력계 형사 윤재신.
그에게 사건은 살아남은 사람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밝혀내야 할 진실이었다.
그런 그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여자가 나타난다.
“싫다면 지금 도망가.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 중독됐거든, 마리안한테.”
그들의 마음이 서로에게 닿으려는 순간,
심연(深淵) 속에 도사린 어둠이 그늘을 드리운다!
퍼즐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위험도 가까워진다.
그는 심연에 물들지 않고 그녀를 지켜 낼 수 있을까.
- 본문 내용 중에서
똑똑.
논문을 쓰기 위해 책상 가득 펼쳐 둔 책에 정신이 팔려 있던 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서류 때문에 구석으로 밀려난 탁상시계의 바늘은 밤 11시에 가까웠다. 의자를 밀고 일어서 문을 열러 가며 메시지를 확인해 보지만, 이미 지난 것들뿐이다.
자물쇠를 벗기고 문을 밀어 열자 재신이 서 있었다. 리안은 더 이상 그에게 왜 이곳에 있는지 묻기를 포기하였다. 팔짱을 끼고 쳐다보았더니 그가 씩 웃으며 손가락에 걸린 비닐 봉투를 들어올렸다.
“참치 김밥이요.”
리안도 그를 따라 픽 웃었다.
매끈한 복도 위를 미끄러지는 고무창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다. 리안은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선 규원과 눈이 마주쳤다. 수술복 차림 그대로인 것을 보아 F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엔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흉부외과 시니어 스텝이 일반외과 연구실 복도를 서성일 이유가 없으니 그녀를 찾아온 것이라 짐작되었다.
살며시 어깨를 감싸는 재신의 행동에 놀라 리안의 몸이 굳어졌다. 아랑곳없이 부드럽게 당겨 안은 그가 몸을 슬쩍 틀었다. 이제 재신과 규원이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을 터였다. 리안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긴장한 리안은 눈을 크게 떴다.
“선택해요. 내 정강이를 걷어차든지 아님, 그냥 이대로 반갑지 않은 상황에서 벗어나든지.”
재신이 귓가에 속살거렸다. 그의 숨결이 닿은 뺨에 오소소 소름이 일어난다. 어깨를 안은 그의 품 안은 몹시 안락하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알아내는 게 내 직업이라니까. 어찌해야 믿으시려나?”
상체를 세우고 빙글거리는 재신을 노려보던 리안의 눈에 왼쪽 광대 옆으로 길게 난 상처가 포착되었다. 리안은 손을 들어 그의 턱을 잡고 사정없이 옆으로 돌렸다. 단호한 동작에 그가 움찔하였다.
“다쳤어요?”
“아…….”
그제야 재신은 유리가 스쳤던 것이 생각났다.
“기껏 살려 놨더니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예요?”
매서운 추궁과 다르게 상처에 닿은 리안의 손길은 섬세하였다.
“호텔에서 마약 사범 검거하다가.”
리안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퇴원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건 현장에 나가다니.
“깨진 유리 때문에.”
변명하듯 웅얼거리던 재신이 그녀를 책망하듯 투덜거렸다.
“그렇게 덮칠 것처럼 노려보지 말죠. 어우, 설레라.”
“지금 농담이 나와요?”
리안이 기막혀 핀잔을 주었다. 웃음기를 걷어 내고 진지해진 그가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농담 같아요?”
재신이 상처에 닿았던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왼쪽 가슴에 얹었다. 손바닥으로 단단한 가슴의 따스한 온기와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리안은 그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본인이 아주 매력적인 여자라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 뒤에 던져진 담백한 진심. 리안이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심장을 따라 그녀의 심장도 덜컥 흔들렸다.
“아무리 의사라 그래도 매력적인 여자가 이렇게 막, 거칠게 다루면 반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