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만 함께 지내. 물론 약혼녀로.”
“약혼녀라니요?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언니가 되라고요?”
거부할 수 없는 그의 제안에 가짜 약혼녀가 되어 무대에 오르게 된 그녀, 유진희.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무대로 뛰어든 한 남자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사랑 따위 믿지 않는 남자, 차도윤.
제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가 버린 그 여자를 막고 싶었다.
그래서 유진희, 그녀를 선택했다.
오직 그녀만이 모든 상황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기에.
달콤한 연극 속에 감춰진 진실이 드러난 순간 알았다.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과연, 그들 연극의 결말은?
- 본문 내용 중에서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대신 채워 줬으면 하는데. 물론 약혼녀로.”
담담한 도윤의 목소리와 다르게 그녀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언니가 되라고요?”
진희가 손짓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그녀의 눈이 ‘아니죠?’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녀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뭐든 두 번 얘기해야 하는 건가? 난 정확하게 말을 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러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냐고요? 뭔가 착각하시나 본데요, 전 언니가 아니라니까요! 아직도 미심쩍어요?”
진희가 손을 크게 내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굴까지 붉어지며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무대에 뛰어오르더니, 이번엔 덜컥 약혼녀가 되라니.
진희가 커다란 두 눈을 껌뻑거리며 도윤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사람 미친 거 아닌가 하는 눈빛이었다. 그 시선에 그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곧 약혼식인데, 신부가 도망갔다는 소문은 좀 곤란해서.”
“곤란한 상황이란 건 이해하는데요, 그렇다고 대신 그 자리를 지키라니 이건 좀 아니죠.”
“무슨 문제라도 있나?”
“당연히 있죠. 전 언니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언니는 곧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 하는 말이야.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일단 소문부터 잠재워야 하지 않겠나?”
“뭐, 뭐라고요?”
진희는 황당한 도윤의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것만 같았다. 뜬금없이 언니의 대역이라니?
“지금 한 말 진심이에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예요?”
“그쪽 말대로 언니는 곧 찾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할 것 없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나더러 언니가 되라는 말이에요? 그것도 약혼녀로?”
“얘기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런 셈이지.”
도윤의 답은 짧고도 명확했다. 그의 표정 또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높낮이 없는 지극히 건조한 말투에 단호한 시선, 그야말로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남자였다. 뜨거운 피에 심장은 뛰는지 의심마저 들었다.
“혹시 지금 농담하는 건 아니죠?”
“농담으로 들렸다면 유감이군.”
“말이 안 되잖아요! 언니를 빨리 찾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정 안 되면 약혼식을 조금 뒤로 미루면 되는 거고요.”
“그럴 수 있었다면 애초에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어.”
도윤의 답은 이번에도 명확했다.
“왜요? 왜 그럴 수 없는데요?”
“그것까지 꼭 밝혀야 하나?”
“네, 알아야겠어요.”
진희가 단호하게 말하며 그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러자 도윤의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렇게 잠시 입을 꾹 다물었던 그가 드디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소중한 걸 잃고 싶지 않으니까.”
진희는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말을 하다 보면 대화가 통해야 하는데, 이건 하면 할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답답했다.
“그 소중하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인생이 언제 공식대로 되던가요? 살다 보면 사람이 급작스런 사정이 생길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물론,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을 잘 넘길 수도 있어.”
“그거야 본인 사정이죠.”
“언니 일인데도 과연 그럴까?”
도윤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굳게 다문 그의 입술에서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또한 그의 검은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희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언니 일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아, 이거 미치겠네! 꼭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