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그쪽이 말했듯 우린 이렇게 술 마시자고 해서 마실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런 사이에 고민이며 푸념이며 들어주는 건 너무 웃긴 일 아니겠어요?”
우리 사이는 딱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듯한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지훈이 되받아쳤다.
“왜요? 술도 마시는 사이인데, 술을 마시면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러면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우리 딱 이 정도 선에서 그만 멈추죠.”
망설임이 약간 묻어났으나 끝내 그녀는 단호했다.
결국에는 선을 그은 거다.
어떠한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섭섭했다.
섭섭했다는 거 자체가 기대한 건가?
가희는 흔들리는 지훈의 눈동자를 읽었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마음이 흔들린다는 게 어떤 의미로 흔들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 어떠한 굳은 의지나 믿음에 금이 갔다.
이렇게 진득하니 오랫동안 눈을 맞추는 건 처음이다.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쳐다만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계속해서 눈을 마주하자니 가슴 한구석이 버거웠다.
더는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불편해질 즈음 그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우리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네요.”
사랑에 빠지는데 많은 이유는 필요 없다. 느낌.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CRAZY LOVE
#명언
#일탈
#숨은 연애 감정 찾기
#연애의 기술
[미리보기]
“차는 그냥 두고 가죠, 뭐.”
“왜 일을 두 번 만들지? 대리 부르는 게 편하지 않나?”
“그래야 그 핑계 대서라도 가희 씨를 다시 만나러 오죠.”
지훈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해사한 눈웃음과 함께.
이 남자 여럿 여자 울렸겠어.
그의 미소와 눈웃음이 작은 불씨를 튀겼다.
뻔한 작업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를 따라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이런 거 안 받아 주는데. 술기운 때문인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집 앞이었다.
“조심해요. 약간 비틀거리는 것 같은데.”
둘이서 소주 네 병에 맥주 세 병을 마셨다.
가희가 소주 두 병에 맥주 한 병째에서 멈추고 정말 가끔 한 모금씩 마셨으니 나머지는 지훈이 다 마신 거다.
“택시에서 내리고 난 다음부터는 걸을 수 있으려나 몰라.”
“그러면, 나 재워 주기라도 할 거예요?”
지훈이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하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가희가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그럴래요?”
“…에?”
너무 뜻밖의 대답이어서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이러다가 현관문 앞에서 졸도라도 할 것 같아 가지고.”
“허, 됐네요. 그 정도로 안 취했어요, 나.”
“아님, 말고.”
희빈이 오늘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여 거실이나 희빈의 방에서 재울 생각으로 물었는데 그가 됐다고 하니 미련 없이 물렀다.
얼마나 쿨한지 두 번은 안 묻는 가희 때문에 웃은 지훈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보통 분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조심해요.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아무리 호구여도 남자는 남자야. 그리고 이건 굿 나잇 포옹. 난 제대로 선 긋기 전에는 안 멈추는 미친놈이니까 알아서 걸러요.”
이런 순정 만화의 미소년 같은 표정을 하고는 양아치 짓을 하는 캐릭터는 제 취향이 아닌데도 순식간에 가슴에 불을 지르고 가버렸다.
이젠 미운 정도 흐려지기 직전이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와 함께 장미를 보러 갔을 때부터인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러한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가 침범하지 못하게 선을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은 선은 이미 그가 지나간 길 위에 그은 거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