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의아하던 혜원의 시선이 엘리베이터 상단의 디지털 숫자가 바뀜과 동시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도 가끔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그 눈이 생각나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양,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울컥 내려앉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자신의 앞에 서 있다.
서강우. 그가.
<본문 중에서>
보름의 달빛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방학이라 잠깐 다니러왔던 집이었고, 우연히 고교시절 어울렸던 친구 녀석들을 만났던 날이기도 했다.
술이 좀 과했다. 그렇다고 비틀비틀 정신이 없었던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난히도 어찔어찔 열이 올라 그 쪽으로 발길을 돌렸던 거였다. 열이 올라 짜증나는 신체와는 달리 머릿속은 차갑디 차가워져 그 괴리에 몸서리가 쳐졌으니까.
“여기서 뭐해?”
수영장 난간에 앉아 달빛을 받아 하얀 다리를 물속에 담근 채 찰방찰방 물장구를 치고 있던 혜원은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 굳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고요를 채우던 물소리가 사라졌다.
“이 새벽에 잠 안자고 여기서 뭐하냐고.”
강우가 성큼성큼 그 곁으로 다가가는데도 혜원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냥, 잠이 안와서…….”
혜원이 그에게서 시선을 내려 이젠 잔잔해져버린 푸른 물을 쳐다보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혜원의 시선을 따라 그의 시선 역시 혜원의 발목을 감싸고 있는 그 물에 가 닿았다. 강우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구긴 채 혜원의 옆으로 앉았다. 피부가 닿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옆자리로 앉음과 동시에 혜원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어떻게 안 해.”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그렇게 좀…….”
“죄송해요.”
“떨지 좀 마라고. 어떻게 안하니까.”
강우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물속으로 풍덩 몸을 던졌다. 고요하던 수영장이 찰박찰박 물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혜원의 종아리 아래로 물살이 사납게 일렁였다. 혜원은 멍하니 그 물살을 쳐다보다 더 앞으로 눈을 움직였다. 그가 물살을 가르며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날. 혜원은 한 동안 그렇게 강우가 수영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강우는 혜원의 그 시선을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물살을 갈랐다.
목차
프롤로그
#1. 오랜만이야
#2. 배짱 한 번 두둑해졌네
#3. 억울한 건 너라고만 생각하지, 넌
#4. 혜원아
#5. 그래서 지금은 이 생각해. 안 보내야지
#6. 그러니까 호칭 정리하자
#7. 그걸로는 안 되는 걸까?
#8. 안식
#9. 내가 여기 있다는 거, 알아달라고
#10. 같이 살까, 우리?
#11. 서강우의 妻, 이혜원의 夫
#12. 오로지 내 것
#13. 오는 비는 맞아야지 어쩌겠냐
#14. 다 줘버리고 그냥 우리끼리만 살면 안 돼요?
#15. 이해를 바란다면 욕심일까?
#16. 이겨야 되는 싸움은 이겨야지. 안 그러냐?
#17. 우린 우리의 인생을 살아요
#18. 예뻐요
#19. 해피엔딩
#20. 그리고 창밖으로 마지막 분수 쇼가 시작되고 있었다
에필로그
차선희(삐끔투)dutl803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