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만, 난 아까운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낼 생각 따윈 없어. 그러니까 날 설득하려고 들지 마. 난 너랑 있어. 그럴 거야.
너는 모르겠지. 내 시간과 네 시간이 함께 흐르지 않을 거란 걸.
그 언젠가 네 시간이 멈추고, 넌 내 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끔찍하겠지.
“불쑥불쑥 내가 모르는 너의 그 10년에 화가 치밀어. 어여뻐 미치지, 싶다가도 죽도록 다그치고 싶어지지. 돌았나 싶게…… 정신이 산란해.”
-본문 중에서-
젠장.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겨 나왔지?
한 번만 더 제 앞에 나타난다면 단단히 경고를 해두어야 할 것 같다. 환이 인상을 찌푸렸다. 바짝 말라 뽀득거리던 모래사장은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어느새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밟히기 시작했다. 제 발에 밟혀 서걱거리는 모래를 힐끗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순간 그는 우뚝 그 자리에 서버렸다.
저 여자를 알고 있다.
저런 칠흑 같은 머리칼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제 눈이 확인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실이라면 말이다.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의 뒤로 깊게 패인 발자국이 길게 그를 뒤따랐다. 서걱거리는 소리 따윈 느껴지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너……!”
팔을 홱 잡아 돌리자 놀란 듯 커진 눈이 그를 향했다.
빌어먹을. 이건 현실이어야만 한다.
수백 번 꾸었던 꿈이 절대로 아니어야 할 것이다.
사나워진 그의 눈이 그녀의 얼굴 위를 굴렀다.
“너!”
“오랜, 만이야.”
이보다 어색한 인사가 있을까. 환은 기가 막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이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미친 듯이 뒤흔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0년이야. 오랜만이야? 감쪽같이 사라진 주제가 오랜만?
애써 미소를 짓는 얼굴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춥지도 않으면서 딱딱 부딪치는 것 같은 제 이처럼.
“변명 쯤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꽉 쥐며 그가 그녀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변명이 먹힐 시간은 아니잖아.”
“그럼 뭐가 먹힐 시간인데?”
사납게 쏘아보는 시선에 주눅이 들만도 한데 수연은 어느새 잔잔했고, 담담했고, 차분했다. 비위가 틀렸다.
고작 인간여자 따위가!
그의 손이 가녀린 목을 틀어쥐었다. 그제야 분위기 파악이 되는 건지 수연의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찾아서 죽여 버릴까…… 도 생각했었어. 변명이 먹힐 시간이 아니라고?”
“그렇게 떠난 건 미안.”
“그건 변명이 아니잖아.”
목을 틀어쥐었던 손이 스르륵 미끄러져 그녀의 어깨를 쥐었다.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자, 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뿐, 소리 한 번 내지 않는다.
[작품 공지]
본 작품은 제공사 요청으로 인하여 2017년 8월 7일부로 작가 정보가 [삐끔투]에서 [차선희]으로 변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