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다녀오세요.”
마중을 하러 현관문까지 따라 나온 녀석에게 시선을 주던 세현은 고개를 삐죽 내밀며 입술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렸다. 자신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던 녀석이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와 입을 살짝 맞춘다. 녀석이 살짝 고개를 뒤로 빼자, 이번엔 세현이 다시 입술을 겹쳤다. 몇 번이고 반복해 입을 맞추던 그는 슬쩍 손을 뻗어 품으로 끌어당겼다. 잠시 멈칫하다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응해오자, 세현은 그대로 녀석을 벽 쪽으로 기대서게 하곤 깊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연습을 하러 갈 때마다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다. TV나 드라마에 보면 주머니 속에 넣어 다니고 싶다는 말이 나오던데, 정말 그러고 싶을 정도다.
한참을 그렇게 녀석의 몸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춘 그는 아쉬운 마음에 다시금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추며 말했다.
“세아야.”
“……네?”
“피아노를 여기로 가지고 올까?”
피아노를 가지고 온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뜬다. 이마에 한 번 입을 맞춘 세현은 말을 이었다.
“영감 때문에 신경 쓰여서 집중이 안 돼. 너 혼자 여기 두는 것도 걸리고.”
“저는 괜찮아요.”
자신이 곁에 있는데, 녀석이 괜찮지 않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그렇고 피아노 소리에 꽤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는다. 볼을 쓰다듬던 그는 은근슬쩍 귓불을 만졌다. 이번에도 역시 몸을 움찔하며 반응을 보인다. 이 녀석과 함께 있는 사실이 이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그런지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게다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과 몸을 나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된 뒤로 더더욱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다. 사춘기는 이미 십여 년 전에 지났건만, 벽세아가 곁에 있으면 꼭 치기 어린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처럼 이렇게 기회만 엿보게 되고 말이다.
콧등에 입을 맞춘 세현은 귓가에 입을 맞췄다. 귓가에 입술이 닿자, 움찔하며 다시 반응을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저번에 장을 보고 온 뒤 가졌던 잠자리 이후로 자꾸만 거부를 하는 통에 요즘 제대로 안아 보지도 못한 상황이다. 평소라면 지금쯤 손을 들어 밀어냈을 텐데, 전혀 밀어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이 녀석도 자신처럼 원하고 있는 걸까. 생각만으로도 음심이 급격히 커지는 게 느껴진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그래도 밀어내지 않는다면 오늘은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은근슬쩍 상의 속으로 손을 집어넣자, 그와 동시에 몸을 크게 떨며 훨씬 큰 반응을 보여 온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에 표정을 살핀 세현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자신을 응시하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몽롱한 눈빛을 보내오는 모습이 왜 이렇게 자극적인지 모르겠다. 몇 번을 눈을 깜박이며 진정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깊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매번 자신과 함께 있을 때면 보이는 수줍은 모습으로 자신의 행동에 맞춰오는 녀석이다. 평소라면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며 어쩔 수 없이 응하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몸을 붙여오는 거다.
손을 대는 곳마다 야릇한 반응을 보여 오는데, 여기서 그냥 멈춘다면 강세현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곧장 몸을 겹치고는 싶지만 또 거부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후크를 풀어낸 세현은 완전히 드러난 등선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녀석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방으로 갈까?”
“…….”
대답 대신 어깨 위에 걸쳐 있던 손에 힘을 주며 끌어당긴다. 작은 행동이었지만 녀석의 마음을 알아챈 세현은 아랫입술을 축이며 안고 있던 손을 풀어 손을 맞잡았다. 관계를 갖기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반응을 보여 오는 건 처음이다. 한껏 기분이 고양된 세현은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리보기]
꽤나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두 걸음 가량 앞서 걷는 벽세아다. 자신이 봤을 땐 도대체 뭐가 특별한 건지 알 길이 없는, 그저 평범한 공원일 뿐인데, 저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인다. 좋아도 너무 좋았는지 함께 왔다는 걸 잊은 듯 혼자 저렇게 쫄랑쫄랑 앞서 걷는 거다.
본의 아니게 녀석의 뒤를 따라 걷던 세현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데이트 상황에 콧등에 잔주름이 하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데이트라고 하면 서로 꼭 붙어 다니며 연인 티를 내는 건데, 지금 상황은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장소도 장소다. 사람이 많은 곳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이렇게 한적한 곳에 온 건 좋았지만, 그래도 첫 데이튼데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녀석이 좋아하는 곳을 둘러보고 싶다. 뭐, 원한다면 사람이 북적이는 놀이공원이나 영화관 같은 곳도 언제든지 갈 의향이 있고 말이다.
영화관 안에서 벌어질 상황을 떠올린 세현의 얼굴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영화관의 특성상 영화가 시작되면 어둑한 주위를 이용해 은근슬쩍 스킨십을 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공공장소이기에 어둠을 틈타 볼에 살짝 입 맞추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지금처럼 녀석의 뒷모습만을 보며 손가락을 빠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하늘거리는 치마를 살랑살랑 흔들며 걷는 모습을 빤히 보던 세현은 저 옷 아래 자신이 사준 속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목이 타는 기분이 들었다.
외국에서 지낼 때 매번 해정이 했던 말이 있었다. 해정의 연인이 그녀에게 옷을 사주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는 말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돈을 허투루 쓴다며 그녀의 연인을 향해 혀를 찼는데, 이제는 그 행동을 백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사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뿌듯하기도 하고, 평소보다 더 예뻐 보인다. 오늘 날씨도 좋아 햇살이 내리쬘 때마다 얼마나 반짝이는지 정말 눈이 부실 정도다.
조금은 나른하면서도 위험한 눈빛으로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현은 갑자기 걸음을 늦추며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녀석의 행동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지 않아도 슬슬 품으로 끌어당겨 손을 꼭 잡으려는 찰나에 이렇게 오니 묘할 수밖에.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자신의 기분을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알아채는 녀석이다. 의식을 하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알아서 나풀나풀 날아오는데,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랍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쪼르르 다가와 보폭을 맞추며 걷는 녀석이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결국엔 배시시 웃으며 눈을 마주한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위로 치솟은 세현은 소리 없이 방긋 웃는 모습에 따라 웃기 시작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보내온 편지를 보며 기분이 상승곡선을 타긴 했지만, 지금처럼 함께 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분에 세현은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처음 시작은 녀석의 편지로 시작했지만, 끝은 자신이 정할 거다. 이제는 벽세아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완전히 내어줘 버렸으니까. 휴가를 마치고 녀석을 혼자 한국에 두고 돌아간다?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만간 녀석에게 함께 가잔 말을 꺼내기로 마음먹은 세현은 힐끔 시선을 주며 물었다.
“좋아?”
“네.”
얼마나 좋은 건지 고개까지 열심히 끄덕인다. 그 모습에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 안은 세현은 관자놀이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그렇게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지 않아도 함께 데이트를 하는 걸 좋아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밀착한 그는 그제야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렇게 닿아 있는 게 가장 기분이 좋다.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걸음을 옮기던 세현은 갑자기 멈춰서는 벽세아의 행동에 따라 멈춰섰다.
“왜?”
“음, 저기요.”
살짝 볼을 발갛게 물들인 녀석이 눈을 똑바로 마주해 온다. 눈가 가득히 담겨 있는 기대감에 세현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또 무슨 행동으로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할지 모르겠다. 뭐가 되었건 마음을 들었다가 그대로 도망치지만 않으면 된다. 괜찮다는 신호에 잠시 망설이다 굳게 다짐하는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든다. 그리고는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을 떼어내더니 반걸음 정도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뜬금없는 행동에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현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봤다. 지금 뭐하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오래 걸은 것도 아니고 정말 몇 걸음밖에 걷지 않았는데, 벌써 품에서 떨어지려 하는 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곧장 이어지는 행동에 세현의 입가가 절로 허물어졌다.
어깨에서 떼어낸 손을 꼭 맞잡아 오는 녀석이다. 그리고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럼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엔 웃고 만다. 조금 전보다 더욱 환하게 벽세아를 따라 웃던 세현은 주변에 잠시 시선을 주곤 혀를 찼다. 왜 하필 사방이 뻥 뚫린 곳으로 오자고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관 같은 곳에 갔다면 분명 입을 맞췄을 거다. 밖이고 뭐고 그냥 품으로 끌어당겨 입맞출까 고민하던 세현은 그 생각을 애써 눌러 담았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요 녀석이 부끄럼이 너무 많아 탈이다. 맞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푼 세현은 떨리는 마음을 숨길 겸 짓궂게 물었다.
“그렇게 손이 잡고 싶었어? 차에서 내내 잡았는데?”
자신의 물음에 얼굴을 붉히던 녀석이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뭐, 잡고 싶으면 잡아 줘야지.”
이쪽이 더 잡고 싶었지만 말이다. 맞잡은 손을 놓칠세라 꼭 쥔 세현은 걸음 속도에 맞춰주며 걷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온 것에 대해 조금 불만스러웠는데, 이제는 불만이고 뭐고 전혀 없다. 녀석이 원하는 만큼 여길 둘러보고 다음 코스를 정할 때 은근슬쩍 영화관 쪽으로 말을 꺼내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