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널 구해달라고 빌어야지. 네 목숨이 소중하단 말은 전부 거짓이었나?”
목숨이 소중하단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이 한목숨은 분에 넘치게 무거웠다. 목숨보다 소중한 또 다른 게 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성도 이름도 버렸다. 왕족의 긍지, 명예, 자부심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왕족으로 산 세월보다 그렇지 않은 나날이 훨씬 많았다. 제국의 속국이 되어버린 로즈테아를 독립시키려 은밀히 활동했다.
그러던 중 나타난 새 총독이 비비안의 삶을 뒤흔들고 말았다.
원수 혹은 적장, 그 어딘가의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남자. 그 남자와 지독히 엮이고 말았다.
우연이라기엔 필연이었고, 필연이라기엔 운명이었다.
“버리는 법이라면 몰라도 놓는 법은 모르는데, 어쩌지.”
“그럼 버리세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운명 같은 사랑에 빠졌다. 그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자신을 버리라는 맹랑한 말을 아무렇지 않은 척 뱉는 맹랑한 여자를 헤멜은 버리지 못했다.
로즈테아를 멸하겠다는 일념으로 참전한 전쟁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을 잃었다. 증오는 뒤틀린 시간만큼 커졌다.
커다란 증오 뒤에는 바란 적 없던 사랑이 뒤따랐다.
여태 자신이 죽이고자 한 로즈테아의 마지막 왕녀가 그 여자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런 제 모습에 환멸이 날 지경임에도 놓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