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10년 전.
그녀가 남녀공학인 한국 고등학교 3학년 12반에 재학 중의 일이었다. 서울 시내 종로 중심부에 있는 한국 고등학교는 역사가 오래된 재단으로 초등부에서 중, 고등부와 대학까지 있는 에스컬레이터 식 사학 재단이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벨소리가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도에부터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3학년 12반에서 멈췄다. 곧이어 남자 교사가 문을 열자 아이들은 우당탕거리며 시끌시끌하던 것을 멈추었다. 자리를 찾은 뒤 언제 떠들었냐는 듯이 시침 둔떼며 조용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담임의 인상이 장마철 천둥치기 전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형상처럼 잔뜩 찌푸려있었다.
“자자……다들 조용히 해!”
선생님이 탁탁거리며 봉으로 교탁을 두드리니 아이들 시선이 교사에게로 모아졌다.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복학생이다. 거기 너, 들어와.”
아이들은 복학생이란 말에 내심 긴장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전학 온 복학생이라니…….
여학생일까. 남학생일까 학생들의 눈 돌아가는 소리가 휙휙 들리는 듯했고 몇몇 아이들의 꿀꺽거리며 침 넘기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하연도 전학생이 누구일지 내심 궁금했다. 그때 터벅터벅 걸으며 한 남학생이 성큼 교실 문으로 들어섰다. 흐핫! 사람이야 조각이야. 웬일이야……쫌 생겼다! 학생들의 신음이 그녀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녀는 친구들 말처럼 만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모습을 한 복학생에게서 시선을 붙잡히고 말았다. 사람 같지 않은 그의 외모에 눈을 깜박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마치 순정만화 속에서 튀어 나온 듯한 뚜렷한 이목구비에 빠져들었다. 깎아 놓은 듯한 콧날을 따라 짙은 눈썹 밑의 쌍꺼풀은 없지만 길게 늘어진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고 귀 아래로 떨어지는 턱 선의 완벽한 조화는 조각 그 자체였다. 짙은 검은 머리카락으로 인해 하얀 얼굴은 더욱 돋보였고 은근 귀하게 자란 귀공자 티가 났다. 그녀는 복학생의 전신을 한 번에 훑었다. 머리끝에서 흘러내리는 귀티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는데 키가 매우 커서 족히 190은 넘는 듯했다.
우와! 하연의 고집스런 입술사이에서도 탄성이 흘렀다. 같은 반 친구인 정우가 제일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비교가 안 될 만큼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복학생이라니 늙수그레한 오빠뻘의 남자인줄 알았더니 웬걸. 동생 하준과 비교해도 될 만큼 어려 보였다. 오! 괜찮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연거푸 탄성이 흘렀다. 외모자체가 귀티를 풍겨 체격이 약해 보일 거라는 예상을 완전히 깼다. 교복을 입고 있지만 단단한 체격으로 봐선 운동을 많이 한 선수처럼 보였다. 꿀꺽! 그녀는 자신이 침을 넘긴 소리인지 앞의 친구가 꿀꺽 된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의 한 눈에 들은 복학생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친구들에게 인사하려 교탁 옆으로 다가서더니 정면의 친구들을 노려보듯 응시했다. 날카로운 눈매에 몇몇 남학생들의 쯧쯧 거리는 한숨 소리와 여학생들의 감탄사가 동시에 들렸다.
“난 미국 시카고 공립 고등학교를 12학년 재학하다 온 우지섭이다. 잘 부탁한다.”
그의 인사는 짧고 간결했다. 그럼에도 여자아이들의 박수소리가 크게 들렸다.
“와!”
여학생들은 열광적인 환영의 박수를, 남학생들은 마지못한 박수를 쳐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선생님이 지섭을 보았다.
“우지섭. 인사말 끝난 거냐?”
“네. 선생님.”
“알았다.”
지섭이 짧게 인사를 끝내고 선생님께 가벼운 목례를 하자 담임이 자릴 배정해 주었다.
“넌 저기 빈자리 있지? 거기 가서 앉아.”
“네.”
지섭은 선생님이 앉으라고 지시한 자리로 가기 위해 친구들 책상 사이를 걸어 들어갔다. 그가 책상 사이를 지나자 여학생들은 수줍어하면서도 옆 친구에게 멋지다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는 여학생들의 야릇한 시선과 남학생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빈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하연의 옆자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