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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천제의 노여움을 받아 인간세계에서 유배중인 호연.
1000년을 공들여 기른 불로초를 인간들에게 짓밟힌 화로 벌을 내리는데
그를 달래기 위해 바쳐진 제물이 제법 그의 흥미를 돋운다.

“소녀, 각시가 아닌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어쩌나, 네가 각시가 아니면 좀 곤란한데.”
“뭐가 어떻게 곤란해집니까?”
“지금껏 제물은 살려 보낸 적이 없거든. 선택권을 줄게.……각시 할래? 제물 할래?”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고 하였던가?
잠시의 귀찮음을 면키 위한 계책은 지금까지 몰랐던 감정을 갖게 하고
호연을 당황스럽게 한다.

“연모란 말로 날 얽으려 하지 마. 그것만 안 하면 넌 원하는 건 뭐든 갖게 될 거야.”
“절 놓아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없어. 넌 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여기 있게 될 거야.”

알 수 없는 소유욕과 집착. 처음 느낀 감정을 애써 외면하는 호연.
그간 여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응보인 것일까?
뒤늦게 제 진심을 알아채지만 그녀는……


[본문 내용 중에서]

‘대체 왜 저러는 거지?’
혜주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호연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사내가 저리 말했다면 한바탕 욕이라도 퍼부었겠지만, 호연은 안타깝게도 범부가 아니었다. 성질대로 굴었다간 저승 구경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러시는 연유가 뭡니까?”
혜주는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물었다.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시종일관 가볍던 호연의 말투가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혜주는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아무래도 진심인 듯했다.
“제물이 어찌 각시가 될 수 있습니까!”
혜주는 달달 떨면서도 할 말을 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진짜 각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각시보다 제물이 더 좋다는 뜻이야?”
호연의 말에 둘 다 싫다는 소리가 혀끝에서 맴돌았다. 혜주는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소녀, 각시가 아닌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어쩌나, 네가 각시가 아니면 좀 곤란한데.”
호연이 난처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뭐가 어떻게 곤란해집니까?”
혜주는 잔뜩 불안해져서 물었다. 사납게 번뜩이기 시작한 금안을 보고 있자니, 입에서 침이 말랐다.
“지금껏 제물은 살려 보낸 적이 없거든.”
호연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가슴이 나달나달해질 정도로 섬뜩한 웃음이었다.
‘저승 구경은 죽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혜주는 저승 구경을 산 채로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덜덜 떨리는 손은 슬며시 치마폭에 감췄다. 손바닥이 고인 땀으로 축축했다.
“선택권을 줄게. ……각시 할래? 제물 할래?”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 있던 호연이 다른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자유롭게 택하라는 뜻으로 한 행동이었겠지만, 혜주에겐 그 손이 제 목을 내려칠 수 있는 칼날로 보였다.
‘어떡해…….’
혜주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 호연은 죽을지 살지를 묻는 거였다.
“……각시 하겠습니다.”
혜주의 낯빛이 툭 건드리면 쓰러질 것처럼 창백해졌다. 호연은 절망하는 혜주를 보면서 웃었다. 재물을 살려 보낸 적이 없다는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았으니까.’
호연의 입매가 짓궂게 비틀렸다.
그동안 수많은 인간이 제물로 바쳐졌었다. 인간들은 가뭄과 홍수가 크게 나거나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산 제물을 들이밀었다. 처음엔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그들이 그걸 원하지 않았다.
제물이 되었을 때 이미 한 차례 버려져서인지 몰라도 이곳에 남길 원했다. 그래서 생을 다할 때까지 장원을 돌보게 했다. 그마저도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 일이었다.
“그러면 초야를 치러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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