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데메테 대륙 전체를 집어삼킨 위대한 제국, 위페르.
이 거대한 제국엔 딱 하나, 존재해선 안 될 동물이 있다.
제국을 몰락시킬 거라 명시된 존재, 고양이.
신탁을 받은 제국은 즉시 그 씨를 말려버리고 근 500년간 끝없는 번영을 누려왔다.
그리고 여기.
앞발에 보송보송한 털을 단 채 서 있는 내가 있다. 고양이에 빙의한 채.
이제 난 누구의 눈에 띄건, 죽게 되는 거다.
"이게 뭐지."
그러나 도망치기도 전에 황태자의 손에 가볍게 잡히고 말았다.
위페르의 완벽한 걸작이라 불리는 황태자,
킬리언 귄터 라인하르트에게.
***
킬리언은 잠들기를 포기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안개처럼 부연 달빛 아래 무언가가 시야에 어렸다.
은은하게 발하는 은발이 물에 풀어 놓은 물감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그는 수면 아래 잠긴 듯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동시에 그의 붉은 눈동자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낯선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제국의 운명을 쥐게 된, 레네트.
그녀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황태자, 킬리언.
“그대 덕이라고 듣고 싶은 모양인데.”
“음, 아주 조금의 지분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칭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