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학도병 엘론, ‘군인다움’보다 어제 내 곁에서 웃던 동료의 죽음이 주는 공포와 상실을 먼저 알아 버렸다. 공격과 폭격 가운데서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깨어난 곳은 적군의 막사 안.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대위, 리카르트.
#첫사랑 #신분차이 #헌신공 #순정공 #순진수 #상처수
이자일지도 몰랐다. 동료를 죽인 살인자가.
경계하는 엘론, 하지만 리카르트는 포로인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말동무를 해 주거나 이따금 초콜릿까지 건넨다.
그 동정이 의아하면서도 안심해 버렸다.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죽고 죽여야 하는 관계였는데도. 그리고 어느 날.
“포로 처분 명령이 내려왔다.”
과연 그들의 서사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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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충고하는 건데, 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몸을 던지지 마라. 너 같은 어린애들은 뇌가 깨끗해서 사상이니 하는 것에 쉽게 물들어. 전쟁이 아니었다면 한창 영웅 서사시나 읽으면서 칼 휘두르는 상상이나 할 때니까. 윗놈들이 지껄이는 이상을 위해서 총을 들어 봤자.”
리카르트는 말을 잇기 전에 잠시 뜸을 들였다.
“개죽음일 뿐이니까.”
엘론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리카르트의 말이 틀린 것 같진 않았지만,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이 시큰거리는 것도 같고, 눈앞이 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리카르트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내뿜고 있는 연기처럼, 그 또한 한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이 자리에 자신만을 남겨 둔 채.
그건 싫어.
“그런 게… 어딨어!”
“꼬마?”
“당신이라고 죽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 아무리 빵을 위해 총을 들었어도… 그래도 목숨은 소중한 거야.”
리카르트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을까.
그는 강해 보이는 어른이지만, 처음 총을 들 때는 프레드만큼 어렸다고 했다. 아무리 각오를 했다지만 눈앞에서 범람하는 죽음에 동요하지 않았을 리 없다.
리카르트는 사람이니까. 그에게도 목숨은 하나였다.
엘론은 그 점에서 속이 상했다.
왜 이 남자는 모든 걸 달관한 것처럼 구는지. 나보고는 목숨을 소중히 하라면서, 왜 제 목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