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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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란의 싸울아비는 어떤 자들인가?"
"적에게 강하나 정인에게는 약한 자,
그가 바로 해란국의 싸울아비입니다."
아사벼리,
해란국의 긍지 높은 싸울아비.
無情의 검을 들고 왕을 위한 춤사위를 나리는 자.
아사벼리,
검량보다 깊은 충정으로 심량을 접는 여인 아닌 여인.
돌아오시네.
다시 돌아오시네, 그 님이.
기다리는 이 없는데, 돌아오시네.
물으시면 대답할 말 나는 알지 못하는데,
거짓된 변명을 찾기도 전에 돌아오시네.
어찌하리, 어찌하리.
말 안해도 말 못해도 금약(金約)인데,
내 그대를 기다리지 않았네.
<작품 속에서>
앞에서 대놓고 창기라 모욕하니, 이런 모욕도 달리 없었다. 그만 꽃분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옆에 앉은 불유의 눈썹도 휙 하니 치켜 올랐다. 저절로 손이 허리춤의 검에 가 닿았다.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서 그 사내의 목을 칠 기세였다.
“아서라.”
벼리가 그를 제지했다.
“모처럼 정인을 보아 좋은 이 자리에서 어찌 귀한 검을 휘두른단 말이더냐? 내게 맡겨라.”
하루 내내 씁쓸하던 기분을 단번에 해결할 좋은 기회였다. 성으로 돌아가면 ‘또 싸움질을 하였다니?’ 하고 아버님의 잔소리를 들을 테지만.
벼리는 느릿느릿 일어났다. 문 앞에 버텨 서서 술 취해 제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분탕질 치는 놈의 앞에 섰다. 뭐냐는 듯 노려보는 그자의 멱살을 잡고 질질 마당까지 끌고 나온 다음, 사정없이 내동댕이쳐 버렸다. 개구락지처럼 흙바닥에 휙 처박힌 놈이 고개를 발딱 들고 고함 고함을 쳐댔다.
“어어, 이놈 좀 보게! 사람을 막 치는구나!”
“취하여 개 노릇을 하는 자야, 이리 대접 받아 마땅하지!”
“오호라, 한번 해보자는 거냐, 이놈! 좋았다, 어디 붙어 보자.”
예상외의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술에 취하여 몸도 채 가누지 못하는 자라 여겼다. 남의 방을 예사로 침입하여 시비질이나 부리는 개차반인 줄 알았다. 손가락 하나로도 감당할 수 있는 하찮은 무뢰배로 여겼는데, 뜻밖에도 몸을 일으키며 단번에 허리춤의 검을 내뽑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반월형의 검이 독 오른 뱀처럼 가슴을 휘감아왔다. 아차차, 하는 사이에 저고리 고름이 툭 잘리고, 옷자락이 흉하게 너덜거렸다.
“이 무례한 놈!”
방심하다 단단히 허를 찔린 셈이었다. 천지분간 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휘둘러대는 취한 자의 검인지라, 어디로 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거의 땅에 닿다시피 몸을 낮추어 다시 달려드는 검날을 피했다. 그러면서 허리춤의 검을 빼들어 눈앞으로 달려드는 검을 막았다. 빠각각, 소리를 내며 두 개의 검이 강하게 맞부딪쳤다. 타다닥, 불꽃이 튕겼다.
처음에는 단순히 건방진 자의 버릇을 고쳐 줄 작정이었다. 한데 어느새 이것은 정식으로 검을 든 대적이 되어 버렸다.
강하게 내려치는 벼리의 검을 잘도 막아내며 단뫼의 사내가 킬킬댔다. 게슴츠레한 눈을 들어 벼리의 가슴께를 징글맞게 훑었다. 옷고름이 잘려져, 저고리 자락이 펄럭였다. 싫든 좋든 봉긋한 가슴골을 단단히 싼 하얀 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오호, 너! 수컷인 줄 알았더니 암컷이 아니냐?”
“이, 이 천박한 놈!”
귀에서 하얀 연기가 날 정도로 분개했다. 그러나 사내는 나불나불 잘도 약을 올리고 있었다.
“큭큭, 암컷더러 암컷이라 하는데 무엇 잘못되었느냐? 허면 남장 계집이라 불러 주랴?”
잘도 막아낸다. 잘도 나불댄다. 검을 휘두르는 솜씨 못지않게 입도 기름칠한 듯 어찌 그리 미끄러운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말마다 아주 사람의 염장을 뒤집었다. 어느새 술 취한 기색은 사라지고, 눈빛이 더 짙어진 그가 다시 벼리의 약을 올렸다.
“정곡성은 이상하군. 암컷이 싸울아비 복장에다 검을 휘두르니 이것, 못쓰겠다. 이곳에는 사내가 그리 없더냐?”
“이, 이 후레자식 같은 놈! 그 더러운 입을 닥치지 못하겠느냐?”
“하하하, 내가 후레자식인 건 어찌 알았느냐?”
“뭐, 뭐라고?”
“내 어미가 아비를 알지 못하는 여럿 자식을 낳았는데, 우리나라 풍습이야 당연한 일. 그중 하나가 바로 나란다. 다른 욕을 찾거라. 후레자식이라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나다.”
격장지계. 마음을 동요시켜 손을 무디게 하려 하였는데, 먹혀들지 않았다. 벼리는 이를 앙다물고 험상궂게 그를 쏘아보았다. 기름질 칠한 저 입을 찢어 놓고 싶었다.
“왜 나를 보니 마음이 동하느냐? 검날 말고 다른 데를 대어 보려느냐?”
다시 사내가 킬킬거리며 조롱했다. 벼리는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검을 움켜잡았다. 죽여 버릴 테다, 이놈! 기를 담아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사내의 목줄을 댕강 끊어 버릴 듯이 강하게 후려쳤다.
[작품 공지]
※ 제공사 변경으로 인하여 재서비스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