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세레디에 성에 내 딸아이가 있네. 부디, 목숨을. 예우를-”
로미니와 이리스가 벌인 일 년간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쥔 액시디움 기사단의
슈아죌 폰 실러. 기사의 명예를 걸고, 캡틴 뮈리엘의 마지막 유언을 듣다.
“이 지역 기사의 영애인데, 저택에 병사들이 들이닥친 순간 자결을 시도했답니다.
포로를 한 명이라도 더 늘려야 한다는 제너럴님의 명에 따라 응급처치를 하긴 했으나-”
아직까지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다, 이 말이군. “자진이라…….”
그 아비에 그 딸인 걸까. 성이 함락되고 패배를 깨닫자마자 자결을 시도한 여인.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습게도 ‘명예를 아는 여자군’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녀를 사 층으로 옮겨라. 포로지만 귀족으로서의 예우를 해 주고
불편함이 없도록 시녀를 붙여. 그리고 깨어나면 곧바로 내게 이르도록.”
“예? 예.” 저 깐깐한 커멘더가 여자에게 말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병사들이 알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었기에 경비병은 그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슈아죌은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틀의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끊김 없이 휙휙 움직이던 깃펜이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멈칫했다. 슈아죌이 고개를 갸웃하며 방문자를 들여보냈다.
“커멘더님, 죠르셰 양이 깨어났습니다.”
편지 쓰기를 방해한 것은 낯익은 병사였다.
“아. 아. 그래. 그녀의 상태는?”
“그것이, 신체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헌데, 언행이 조금 이상합니다.”
“무엇이?”
“예. 듣자니 깨어나자마자 몸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다시 기절했답니다.
두 번째로 정신을 차렸을 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더랍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기도 한데, 자기 말로는-”
병사는 스스로도 황망한 듯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왔더랍니다. 차원이동이나 환생을 한 것 같다고 스스로 주장을-”
“…….”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한참 후에 슈아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성했군. 딱하게도 정신을 놓아 버렸어.”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기사다운 아비 밑에서 자란 명예를 아는 여인이었거늘.
그는 여인의 안타까운 운명에 애도를 표했다.
[등장인물]
무예, 전술, 기사도. 어느 하나 흠 잡을 것이 없는 기사, 슈아죌.
일 년간의 전투 끝에, 숙적이었던 적장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뛰어난 기사에 대한 마지막 예우로 그가 남긴 딸의 목숨을 약조하는데.
이 여자, 정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다른 세계에서 왔더랍니다. 차원이동이나 환생을 한 것 같다고 스스로 주장을 하는데요?”
병사의 말을 들은 슈아죌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성했군. 딱하게도 정신을 놓아 버렸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여대생, 아인.
20년 동안 연애 한 번 못 해 보고, 기껏 박 터지게 공부해서 유망한 대학의 성악과에 입학을 했건만, 분홍빛 캠퍼스의 꿈은 사차선 도로의 중앙선을 넘은 것도 모자라 인도를 습격해 버린 도전적인 중형 세단에 의해 산산조각 난다.
그리고 그녀는 낯선 방에서 눈을 뜨는데.
“이 몸, 원래의 내 몸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