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열여섯의 월.
무가인 하우와 문가인 소가의 혼담이 오가던 어느 날,
“주변에 이리의 이름을 가진 이가 있는지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이질적인 목소리의 점쟁이가 물었다.
“하우가의 부가주님과 소가의 도련님 궁합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도련님과 부가주님 사이에 이리의 그림자가 자꾸 보이고 있지요.
주변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 혼사를 서두르십시오.
그리되면 그림자는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꽃내음 가득한 하우가와 소가의 혼례날,
하우가에 이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 날 이후로 하우가의 부가주 하우월은
자신의 이름으로 죽어 간 벗, 이수로 살아간다.
스물넷의 이수.
뜨거운 사막의 모래가 휘몰아치던 그 날…….
회색여우로 살아가던 그녀의 앞에 나타난 한 남자가
메마른 그녀의 삶에 다디단 꽃 한 송이를 피운다.
“당신을 옥죌 생각도, 그렇다고 귀족인 내가 좋으니
너는 내게 안기라, 날 따르라, 억지로 끌고 갈 생각도 없어.
그러니 나에게 조그마한 연정도 품지 않았다면 흔들리지 마.”
향할 곳 없는 연정,
그것이 서로에게 닿은 순간, 운명은 둘 앞에 슬픔을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