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여기가 천국인가요?”
“그럴지도 모르죠.”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잿빛 복도 속에 떨어진 정민. 그녀 앞에는 냉철한 외모로 단단히 무장한 낯선 여자가 서 있다. 복도는 미로처럼 육각형의 모양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고, 복도마다 같은 모양의 하얀 문이 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치 죽은 이들의 공간 같다. 살아있는 거라곤 자신과 자기 앞에 서 있는 여자뿐인 거 같다. 아니, 어쩌면 자신도 살아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정민은 생각한다.
여자는 정민에게 긴 숫자가 적힌 카드키 하나만 건네주고 사라진다. 정민은 어떻게든 그 숫자가 적힌 방으로 찾아가보기로 한다. 이곳이 어디며,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방 안에 해답이 들어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복잡한 미로 속을 걷기 시작한다.
○ 나는 대학에서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끝에, 할 일 없는 사람이 되어 배출되었다. 배설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이 살아가는 정민은 대한민국 청년백수 중 한명. 지구는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곳이라 생각하며 늘 현실도피만을 꿈꾼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은 껌종이 버리듯 바닥에 질질 흘리고 다닌다.
학창시절, 정민은 좋아하는 걸 어른들로부터 뺏긴 후 어떤 일에도 흥미를 보이지 못한다. 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입학해서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하는 건 다 따라했고,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도 모른 채 졸업을 한다. 졸업을 하니 역시나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메이크업 학원에 등록을 한다. 그때까지 정민은 자기 얼굴에 화장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연예인을 꿈꾸는 진아를 사귀게 된다. 야무지고 당찬 진아의 꿈 앞에서 정민은 아무 생각 없이 학원을 왔다 갔다 하는 자신이 한심해진다. 그러나 한심한 자신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역시나 한심하게, 자신이 학원에서 사기를 당한 것을 알게 된다.
● 육각형의 관(棺)처럼 생긴 방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끝도 없이 늘어서있다.
그건 마치, 거대한 벌집 같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육각형의 방들 사이로 육각형의 복도가 흐른다. 그 복도 때문에 각각의 방은 옆방과 맞닿은 곳이 없어, 마치 육각형의 복도 위에 홀로 떠있는 섬 같다. 사람들은 이곳을 벌집이라고 불렀다. 정민은 이곳에서 안식을 느끼며 정착해간다. 벌집은 인간이 살기에 최적화된 곳으로 좌절과 두려움 같은 불행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각자의 방에는 꿈 생성기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불안한 마음을 거둬내고 평온한 꿈만 주입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기계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에서 꿈 생성기가 만들어주는 꿈을 꾸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며 지낸다. 딱히 해야 할 일도 없고, 밖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정민은 희명이라는 여자와 언행이 이상한 아저씨를 알게 된다. 정민은 유일하게 희명에게만 마음을 열고 지낸다. 아저씨는 정민과 희명이 함께 있을 때마다 나타나 자꾸만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