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승준이는 진열장에 놓인 글라스를 세면대에 부딪쳐 조각을 냈다. 그리고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조각을 움켜쥐며 말했다.
“형! 내가 죽여줄게. 저 새끼.”
잠시 말문이 막혀 당황하던 순간에 이미 유리조각은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그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승준이의 팔을 강하게 잡아채는 손이 있었다. 이어서 승준이의 허리를 감는 또 다른 팔이 부드럽게 토닥였다.
“이러지 마. 내가 부탁할게.”
호석이 형이었다. 승준이를 끌어안으며 진정을 시켜주는 사람이. 하지만 난 이미 호석이 형의 눈 속에 감돌았던 비참한 심정을 알아챘다. 그럼에도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진정치 않는 승준이의 분노. 더불어 재현씨의 숨결이 내 귓가를 스치며 아스라이 사라진다.
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심정을 달리하는 우리 네 사람. 내가 화근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난 자학의 눈물로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멈춘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미스터리 남자 재욱, 첫사랑의 베일에 싸인 찬민, 자연스레 커밍아웃이 된 호석, 그리고 이누와 승준의 행복한 시간에 우연을 가장하여 접근한 재현. 전편보다 더욱 위기로 치닫는 이들의 갈등과 애증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시리즈 소설 <잔혹하고 우아한 로망>의 다섯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