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서 장
소록소록 내리는 흰 눈!
함박눈이다. 온 천지를 희게 물들이는 그 흰빛 속에서 대륙 서쪽의 명산 십만대산(十萬大山)은 거대한 웅자를 고고히 드러내고 있었다.
봉우리가 무려 십만에 달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시선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선 첨봉들이 저리 천하를 오연히 주시해 서역의 하늘이라 불리는 것인가?
그런데, 무엇일까?
십만대산의 제일봉, 준극봉에 우뚝 서 있는 저 물체들은?
사람이었다.
세 사람이었다.
한 사람!
온통 희고 또 희었다. 육 척을 넘는 훤칠한 몸을 감싸고 있는 백의와 눈처럼 흰 머리와, 바람에 갈꽃처럼 날리는 흰 수염! 심지어는 허리에 차고 있는 검집조차 백색 빛을 띠고 있었다.
단 하나, 백 살이 넘어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대춧빛처럼 붉은 안색만이 유일하게 달랐다.
다른 한 사람!
그는 검었다.
철저하게 검었다. 머리, 옷, 허리에 비스듬히 차고 있는 검집도 검은 색이었다. 아마도 검조차 시커먼 묵빛을 띠지 않을까 싶다.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검은 색이 상징하는 극패(極覇)의 기도였다.
허나 얼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정도로 희고 준수한 그 얼굴과 담담한 미소를 띠어 드러난 치아만이 눈처럼 희었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사람이지만 공통점이라면 그들에게서 풍기는 탈속(脫俗)과 자연스러움이다.
백색의 노인이야 이미 백 년을 넘게 산 연륜의 결정이라 할 수 있지만 흑색 일변도의 청년에게서 풍기는 속탈의 의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휘이이잉!
준극봉에 바람이 몰아쳤다.
삭풍은 눈보라와 함께 살을 에일 듯이 몰아치는데.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한 여인!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 여인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조부(祖父)요,
한 사람은 정인(情人)이라!
조부는 백만 정도무림의 태상맹주(太上盟主)요,
정인은 그녀의 가문과 대립하는 백만 마도의 총수(總帥)인 백만마종주(百萬魔宗主)일지니!
서설이 천지를 덮는 이 날!
흥겨워야 할 두 사람의 첫 번째 대좌는 그런 이유로 이렇게 피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