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성도 이름도 없이 버려진 소년......
동정심에 던진 동전 한 문으로 인해 일문이란 이름을 얻게 된 그의 앞에는 대황하보다 더 탁하고 거친 강호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넓고 어지럽구나.
천만 년을 변함없이 흐른 황하처럼 살고 싶어라.
복수도, 한도 대업도 부질없도다.
영웅호가행을 부르며 떠나리라.
<맛보기>
* 1장 강상혈겁(江上血劫)
대륙의 맥동인 양자강(楊子江=일명 通天河. 중국제일의 강).
그 강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선박들을 보면 언제나 짐과 사람을 가득 싣고 있다. 특히 포구(浦口)와 하관(下關)을 왕복하는 범선은 언제나 만원이다.
금릉이 황도의 기능을 잃고 북경성(北京城)으로 천도한지도 어언 일년여가 지났다. 그러나 비록 지난날의 영화는 잃었으되 산물이 풍부한 강남제일 대도(大都)로써의 면모는 아직도 여실히 남아 있었다.
포구에서 범선을 타면 하관에 닿고 거기서부터는 곧장 금릉성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도도히 흘러내리는 물살을 가로지르며 한 척의 범선이 강의 중심을 지나고 있었다.
배의 이물 쪽에서 아이의 천진하고 맑은 음성이 울린다. 그것은 파도소리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똑똑히 들렸다.
"왕사부(王師父)님! 모두들 이 선물을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하하하... 설마 이렇게 많이 사 가지고 갈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 걸요?"
한 소년이 이물에 매달린 채 잔뜩 들떠 있었다. 얼굴이 발그레한 미소년이었는데 나이는 대략 십사세쯤 되어 보였다.
눈이 크고 둥그스름하여 어찌 보면 계집아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예쁘장했으나 먹으로 그린 듯한 눈썹과 오똑한 콧날에서는 제법 기백도 엿보였다.
서동(書童)의 복장을 하고 있는 소년의 옆에는 역시 문사차림의 중년인이 출렁거리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쯤 감은 듯한 눈에 입술은 한 일자로 다물려 있었는데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갸름한 눈꼬리에는 세상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한 냉소적인 기운이 드리워져 있어 마치 오만한 낙방수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소년은 여전히 희희낙락이었다.
"하하하... 지난번에 장병(張兵)은 붓이 낡아 글씨가 그 모양이었다고 투덜댔고, 희강(希江)은 또 뭐랬는지 아세요? 왕희지 서체를 연습하기에는 책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하하... 그 놈들은 좀체로 자신의 실력이 제게 뒤진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할 말이 없을 거예요. 우리가 이번에 구입해 가는 물품들을 보면......."